
INTRO - Side A
오후 7시, 수족관의 폐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오후 7시 30분, 마지막 관람객이 수족관에서 나온다.
오후 9시 30분, 직원들이 퇴근한다.
오후 10시, 수족관의 문이 다시 열린다.
매표소 앞 너도나도 약속한 듯 꽤 많은 인파가 서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입구가 환하게 반짝이더니 흰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라기엔 익숙한 사람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몇번 얼굴을 장식한 그 사람.
" 반가워요, 라일리라고 해요. 앞으로 열흘간 머무를 여러분들의 담당자이자, 도버의 비서입니다."
그, 혹은 그녀가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웃으며 어서 들어오란 듯 손짓을 한다.
깔끔한 로비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흰색 바구니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카운터 뒤 큰 화면에 '어비스 마린에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라는 큰 문구가 뜬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초대장을 확인하며 한 명씩 들여보낸 후, 초대장을 세어보고는 문을 닫는다.
조명이 어두워지며 간단하게 수족관을 홍보하는 영상이 플레이된다.
B2층을 보다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는 수조 속 터널, 체험 학습용 터치풀, 잘 죽지않는 개복치,
일일 스쿠버 다이빙 체험, 귀여운 수달과 해달 전시중, 밀물 친구들,
복원중인 멸종된 상어의 새끼 최초공개, 실러켄스 보유중, 기타등등의 진부한 홍보 영상이었다.
라일리는 매표소 앞 로비에 바글바글 모여 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보고 패드를 들어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 다시 한번 꼼꼼하게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을 스캔한다.
빠짐없이 참석한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스캔이 끝날 무렵 영상도 끝나며 조명이 다시 밝아진다.
"다들 제시간에 와주셨네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참 잘했단 듯 손뼉을 작게 치고는 옆쪽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킨다.
"바구니 안에는 여러분들을 위한 출입증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의 바구니를 찾아 그 앞에 서주세요.
그리고 열흘간 꼭 목에 걸고 다녀주세요. 잃어버린다면 지하 3층 출입은커녕,
무단침입으로 간주하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 주세요."
초대된 사람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제 사진이 보이는 통행증을 찾아 자리를 잡고 선다.
"여러분이 가져오신 짐 중에서, 액체류, 화기, 무기, 흉기, 카메라,
그리고 휴대 전자기기들은 바구니에 담아주세요."
잠시 술렁임이 오갔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영상이 나오던 화면에 반입금지 물건들의 리스트가 뜬다.
"여러분은 개인 소장품을 보러오셨습니다. 위험한 물건과 기록이 가능한 물건들은
꼭 바구니 안에 넣어주시길 바라요. 걱정 마세요 잘 보관해두고 열흘 뒤 돌려드리겠습니다.
연락을 취하셔야 한다면 지금 취해주세요."
웅성웅성하더니 하나, 둘 캐리어와 제 소지품이 든 가방을 열어 명시된 물건들을 바구니에 넣어둔다.
그들이 준비하는 동안 라일리는 무언가가 인쇄된 종이를 꺼낸다.
"준비가 되신 분은 이쪽 금속 탐지기를 지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가방은 검사대 위에 올려두시고요.
그리고 제게서 이 종이를 받아가 주세요."
직원들이 꼼꼼하게 검사를 하고 탐지를 하더니 별 이상이 없는 사람에겐 고개를 끄덕인다.
짐을 찾은 사람들은 라일리로부터 종이를 받아든다.
종이의 상단에는 동의서라고 적혀져 있었으나, 내용은 흡사 계약서와 같았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곳에서 본 것에 대해서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 기록하지 말 것, 경매 상품에 흠집을 내지 말 것,
그리고 이후 미련이 남 건 무슨 연유 건에 찾아와 팔아달라고 애원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당신에게 불이익이 일어난다면 어비스 마린의 책임이 아니라는 고지식한 내용까지.
"각 항목 끝에 이니셜 새겨주시고, 다 읽으시면 제일 아래 사인해주시고 날짜 적어주세요.
혹시나 이 조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언제든지 나가셔도 좋습니다."
라일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카운터 뒤에 앉아 종이를 기다린다. 몇몇은 뭐 이런 게 다 있냐며, 뭐가 그리 대단한 게 있냐며 이렇게 꼭꼭 숨기느냐, 마음에 안 든다며, 자존심이 상했는지 불평을 하며 다시 짐을 챙기고, 통행증을 반납하곤 동의서 대신 초대 포기각서를 작성하고 문을 나섰다.
라일리가 눈앞에서 그들의 초대장을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리고, 짐 검사에 동의서작성까지 끝낸 남은 인원들을 보고 직원에게 부탁해 수족관 문을 걸어 잠근다. 나갔다가도 이내 후회하는 사람들이 문을 쾅쾅 치며 열어달라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야단이었지만, 라일리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웃으며 셔터를 내려 완벽하게 외부를 차단한다.
"좋아요, 이제 정말 준비가 다 된 것 같아요."
라일리는 초대된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제 손바닥 인식으로 인증을 하고는
B3 층을 입력한다. 그리고 한 그룹씩 차례로 내려보낸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엘리베이터는 정말 지루할 정도로 한참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 3층입니다. 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곤 B3라는 문구가 출력된다.
어두웠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다들 당황한 듯 내리길 꺼렸다.
문이 닫힙니다. 라는 안내 음성에 다들 허둥지둥 내려서는 황망하게 서 있었다.
연이어 두 번째 그룹이 도착했고 마찬가지로 당황했다.
세 번째 그룹 역시 도착했다. 라일리가 함께 동행 했다지만, 예상치못한 어둠에 마찬가지로 당황한
라일리가 익숙하게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어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최소한 불이라도 켜두고 있어라니까!"
기계음이 들리더니 검은색 스크린이 좌우로 걷히며 푸르고 눈이 시린 빛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제야 탁상과 아늑한 소파가 있는 라운지가 보였고, 작은 실내 수영장, 그리고 수조 관람석이 보였으며,
검은 벽은 압도적으로 거대한 수조로 변하며 바닷속에 있는듯한 착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수조속엔 홍보영상에서 보았던 만타 가오리나, 돌고래, 고래상어는커녕
시시한 잔챙이 물고기들만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법 쓸쓸한 수조의 푸른빛을 등지고 있는 두 개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에헴"
목을 잠시 가다듬더니 내부의 은은한 조명이 켜진다. 그리고 그 두개의 실루엣의 정체가 드러난다.
"반갑습니다. 도버라고 불러주시길."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키가 아주 큰 중년의 남성이 쑥스럽게 말을 이어나간다.
"… 이곳과 옆에 있는 박물관의 총 책임자입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기에, 옆에 서 있던 라일리가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른다.
"우선, 이번 경매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진귀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제 바람이 큽니다. 경매를 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슬프게도 제 수족관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큰 결심을 내렸습니다."
저 멀리서 검은 무언가가 헤엄쳐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도 그것은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이번 경매 오르는 '존재'는 저희 가문에서 대대로 어렵게 구한 존재들이며,
그간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매일 영양식을 제공했으며,
그들이 지낼 최상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간 제 노력을 혼자 돌이켜 보며 감동에 젖었는지 코끝이 찡해진다.
라일리가 정신 차려란 듯 또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공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뜻밖에도 경매에 오르겠다고 자처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죠…."
도버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그래서, 앞으로 열흘간 여러분들이 그들과 지내보며, 자신이 그들을 감당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이 된다면, 배정받은 개인실에 갖춰진 모니터의 마음에 드는 존재에게 입찰가를 입력해
넣어주시면 됩니다. 경매가는 익명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됩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이번엔 여러 개의 존재가 헤엄쳐 오더니 도버의 뒤쪽에 몰려든다. 인어였다.
사람들은 도버보다는 도버의 뒤에 있는 인어들에게 눈이 가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마리도 아닌 한 무리의 인어들이었다.
"물론, 자처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여러분이 적합한 환경, 음식, 그리고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겨질 때, 그들은 수족관에 머무르며 당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이번엔 라일리도 그를 부추기지 않았다.
"저는 그들을 제 사랑과 노력으로 키웠기에, 무작정 팔려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최종 결정권은 그들이 갖게됩니다. 그러니 부디, 그들의 환심을 사시길 바랍니다."
말만 듣자면 이 사람 정말 돈이 급한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니라면, 그저 퍼블릭에 자신이 가진 개인 컬렉션을 뽐내고 싶었던 걸까.
혹은 인간을 모방하는 존재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부여해주는 것이었을까.
돈을 내는 사람들은 우리인데,결정은 저들이 한다니, 이런 경매는 처음이란 듯 어이가 없었지만도,
물속에서 화려한 모습을 뽐내며 이리저리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넋이 나갔다.
마찬가지로 도버의 뒤편에 숨어 매일 질리게 보던 직원들과 라일리가 아닌 외부인을 마주했기에 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두꺼운 아크릴을 연신 두드리는 행위를 한다. 라일리가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고개를 까닥이자 유유자적하게 헤엄을 치다 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럼…. 모쪼록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어둑한 심연으로 모두가 초대되었다.

INTRO - Side B
최근 도버의 한숨이 늘어났다.
큰 라운지에 드러눕듯 엎어져서는 매번 한숨만 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그가 신경 쓰였는지 수조에서 헤엄치던 인어들이 서로 동의라도 한 듯 나와 그와 합석한다.
도버, 힘들어? 기분 좋게 해줄까? 마사지해줄까? 왜 울어? 도버 이상해. 도버 기운 없어 보여. 도버 어디 아파? 도버, 죽고싶어?
그를 에워쌈과 동시에 여러 질문도 그를 에워싼다.
한참 엎어져 있던 그가 추스른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앉는다.
"가서 모두를 불러주련?"
지하 3층에 거주 중인 모든 인어가 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와 라운지에 자리 잡고 앉아서는 그를 쳐다본다. 몇몇은 샤워가운을 걸치기 귀찮았는지, 나체였고, 몇몇은 흥미가 없었는지 실내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꼬리를 살랑이며 그를 쳐다봤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 최근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네."
그래? 그래? 그래?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는걸. 미안해. 미안해 도버, 미안해.
다들 한입을 모아 대답을 한다.
"라일리가 경매에 너희들을 내놓는 건 어떻냐고 물어보더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피곤한 듯 눈을 비빈다. 잠시 침묵이 오가다가도 다시 인어들이 질문한다.
울지 마. 울지 마. 우는 거야? 도버 울어? 도버 울어? 경매? 우리 여기서 못살아? 팔리는거야?
또 끝없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아무리 이곳의 생활이 싫다고 한들, 여태 지내왔던 환경보다는 좋은 건 확실했다.
그리고 도버가 무너진다면 자신들 역시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더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모두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역시 잘 알았기에 이렇게 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달아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에 의한 수입이 줄어들어 유지비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었다.
"경매…. 를…. 몇 명의 손님만 초대해서 해볼까 생각 중이야. 모두를 내놓는 건 아냐.
그리고 모두가 '팔려가야 하는'것도 아니야."
그럼? 그럼? 그럼? 돈 뺐으면 먹어도 돼? 죽여? 죽여서 돈을 가져가?
도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희에게 최종 선택권을 주겠어.
나는 이 수족관 밖에 더 좋은 곳이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너희를 보러온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타당한 금액을 제시한다면,
그 사람에게 갈 기회를 줄게."
그 사람이 가난하면 어쩌지?그 사람 집에 이렇게나 큰 수조가 있을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그러니까 열흘. 열흘간의 시간을 줄게. 그리고 너희들에게 최종 선택권을 주고."
그 사람이 널 배신하면 어떻게 해 도버? 그 사람이 우릴 못 가져서 널 배신하면 어떻게 해 도버? 도버?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도버?
"그럼…. 늘 그랬듯…. 그렇게 해야겠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질린다는 듯이 소파에 드러눕는다.
합창하듯 물어오는 그들이 머리를 더 아프게 한다.
도버, 힘들어? 도버 죽고 싶어? 도버 죽고 싶어? 도버 죽고 싶어? 도버 이제 죽을때도 됐잖아? 이제 죽는거야? 그들이 드러누운 남자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쓰다듬어준다.
차가운 느낌이 퍽 좋았지만, 두통이 가시진 않았다.
"하여튼, 이번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 아이들은 내게 귀띔해주련.
경매에 참여까진 아니라도, 간만에 재미를 보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내게 귀띔해주고."
큰 결심을 했고, 또 할 말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버 시시해, 도버 재미없어. 도버 우리한테 흥미를 못 느껴? 도버 우리가 질려? 도버 우리가 싫어?
다들 아우성이었다. 오래간만에 불러내길래 뭔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럴 리가. 난 너희 모두를 사랑한단다. 너희 모두를 놓고 싶지 않단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그리고 너희의 비밀을 지켜주는 만큼, 나를 좀 도와주련?"
그제야 입을 삐죽이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라며 합창하듯 대답한다.
물론 모두가 대답한 건 아니지만.
한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일을 털어놓고 나름 협조적인 그들을 보며 내심 안심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손바닥 인식을 하고 나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난 여기가 싫어."
몇몇 인어는 그렇게 대답했고,
"난 여기가 좋지만 여기서 나가보고 싶어. 한곳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도 싫어."
몇몇 인어는 또 이렇게 대답했고,
"난 여기가 좋아."
몇몇 인어는 이렇게 대답했으며,
"……."
몇몇 인어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후 도버는 경매에 참여하는 인어와 단순히 재미만을 보고 싶은 인어들을 모아 큰 수조로 옮겼다.
공개 자체를 꺼리는 인어는 격리실로 옮겨뒀고, 라일리는 직원들을 불러 지하3층을 청소를 시킨다.
하나하나 자신이 다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이었기에 리스트를 정리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책상앞에 안절부절 못하며 이리저리 겉돌다가도, 자리를 잡고 앉아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친애하는 당신에게'